사촌 동생이 친구랑 무인 매장에서 저지른 장난이 범죄가 된 순간
사촌 동생이 군대에서 전역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친구랑 오랜만에 만나 술을 진탕 마시고는 홍대 근처 무인 인형뽑기방에 들어갔다가 제대로 사고를 쳤다. 술기운에 기분이 들떴는지 매장 구석에 놓여 있던 인형 몇 개랑 장식용 소품들을 그냥 품에 안고 밖으로 나와버린 것이다. 요즘 길거리 무인 매장 어디에나 CCTV가 사방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정말 한심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며칠 지나지 않아 사촌 동생 휴대전화로 모르는 번호의 연락이 왔다. 마포경찰서의 담당 형사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매장 절도 건으로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전화였다. 동생은 처음에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전화를 툭 끊었다가, 잠시 후 문자로 정식 사건 접수 번호가 찍혀서 날아오자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나한테 울며 겨우 전화를 걸어왔다. 이모네 가족들도 다들 경황이 없어 하길래, 그나마 직장 생활을 오래 하며 세상 물정을 조금 더 아는 내가 보호자 격으로 같이 경찰서에 동행해 주기로 했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물건값 몇만 원 물어주고 주인에게 사과한 뒤 가벼운 벌금이나 즉결심판 정도로 끝나는 가벼운 해프닝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단순 절도인 줄 알았으나 둘이 함께하여 특수절도가 적용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
경찰 조사 날짜를 잡기 전에 일단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려고 법률사무소를 찾아가 변호사 상담비용으로 10만 원을 지불하고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거기서 생각지도 못한 무서운 죄명을 듣게 되었다. 바로 ‘특수절도죄’였다. 나는 영화나 뉴스에서나 보던 것처럼 밤중에 문을 강제로 부수고 들어가거나 칼 같은 무기를 들고 남의 물건을 뺏어야만 특수절도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변호사 설명은 달랐다. 우리나라 형법상 성인 두 명 이상이 ‘합동하여’ 남의 재물을 절취한 행위 자체만으로도 바로 특수절도죄의 요건이 성립된다는 것이었다. 사촌 동생이 혼자 훔친 게 아니라 친구와 둘이서 같이 물건을 들고 나왔기 때문에 꼼짝없이 이 혐의가 적용된다고 했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 부분은 특수절도죄는 단순 절도죄와 달라서 법정형에 벌금형 규정 자체가 아예 없다는 사실이었다. 즉, 혐의가 인정되어 기소되면 아무리 초범이라도 기본적으로 징역형(집행유예 포함) 선고를 기준으로 판결이 내려진다는 뜻이었다. 전과 하나 없는 대학생 아이에게 징역형 전과가 남을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정말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단순 절도는 벌금형으로 약식기소 되는 선에서 끝날 여지라도 있지만, 이건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합의금 조율 과정에서 겪은 집요한 감정 싸움과 현실적인 액수 차이
어떻게든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전과가 남는 것만은 막아야 했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피해자인 매장 주인과의 합의였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피해자분은 합의금으로 300만 원이라는 꽤 큰 금액을 제시하셨다. 훔쳐 간 인형과 소품의 실질적인 가치는 다 합쳐봐야 7만 원 안팎이었는데,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동안 무인 매장을 운영하면서 쌓인 도난 스트레스와 경찰에 신고하고 CCTV를 확인하느라 허비한 시간적 손해까지 전부 이번 기회에 보상받겠다는 심산이신 듯했다. 금액이 너무 과한 것 같아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고 다른 사례들과 비교도 해보았지만, 법적 강제력이 없는 합의금은 결국 피해자가 부르는 게 값이었다. 변호사도 특수절도처럼 형량이 무거운 건에 대해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을 이끌어내려면 피해자의 ‘처불불원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결국 돈이 없던 사촌 동생을 대신해 이모가 급하게 돈을 융통해야 했고, 내가 중간에서 주인분께 몇 번이고 머리를 숙여 사죄하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며 사정을 읍소했다. 다행히 상대방도 마음이 조금 풀리셨는지 합의금을 최종 150만 원으로 낮춰주셨고, 합의서와 처벌불원서를 겨우 받아낼 수 있었다. 송금을 완료하고 서류를 손에 쥐기까지 며칠 동안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마포경찰서 조사실에서 보낸 긴장되는 시간과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
합의서류를 챙겨 들고 마포경찰서 1층에 있는 종합민원실을 거쳐 형사과 조사실로 올라갔다. 경찰서 특유의 무겁고 딱딱한 공기 때문에 옆에 서 있는 나마저 목이 바짝바짝 탔다. 담당 형사는 생각보다 아주 위압적이지는 않았지만, 질문의 결은 매우 예리했다. “처음부터 훔칠 목적으로 같이 들어갔느냐”, “누가 먼저 가져가자고 부추겼느냐” 등 공모 여부를 확인하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사촌 동생은 연신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이며 술김에 장난으로 들고 나왔을 뿐이라며 울먹였다. 만약 여기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정황이 드러나면 죄질이 훨씬 무겁게 평가되기 때문에 옆에서 답변 과정을 지켜보는 매 순간이 가시방석이었다. 신문조서 작성을 다 마치고 조서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한 뒤 지장까지 찍고 나니 1시간 반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형사님이 합의서도 제출되었고 대학생 초범인 점을 감안해 서류를 검찰로 송치하겠다고 했지만, 검사가 실제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벌금형이 없는 법조항 때문에 결국 기소유예 처분을 목표로 잡고 버틴 4달의 기록
경찰 조사가 끝나고 사건이 검찰로 넘어갔다는 문자를 받은 뒤부터 진짜 피 말리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글들을 찾아보면 보통 기소유예 처분은 한두 달 안으로 결정이 난다고 하던데, 우리 사건은 검찰청에 배당된 이후로도 한참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동생은 매일 형사사법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자기 사건 번호를 검색하며 피가 마르는 일상을 보냈고, 이모네 집안 분위기도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혹시라도 검사가 괘씸죄를 적용해 정식 재판에 넘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매일 밤 엄습했다. 그렇게 경찰서 연락을 처음 받았던 날부터 시작해서 최종 처분 결과가 나오기까지 꼬박 4달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결과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기소유예 처분으로 끝이 났다. 전과가 남지 않아 동생의 앞날에 빨간 줄이 가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그 4달 동안 온 가족이 겪은 심리적 고통과 허공에 날린 합의금 및 상담 비용을 생각하면 전혀 개운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무인 매장의 물건을 가볍게 생각하고 손을 댔다가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아주 뼈저리게 배웠다. 비록 일은 해결되었지만, 아직도 경찰서 건물만 보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불안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혼자 걷는 거보다 둘이 같이 걷는 게 더 무거워 보이네.
혼자 훔쳤다고 생각했던 게, 함께 했다니… 정말 놀랍네요.
CCTV 없는 곳은 정말 없어진 것 같아요. 처음엔 단순 절도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특수절도가 적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인형만 훔치는 게 이렇게 복잡해질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