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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 고장 났을 뿐인데 법률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가전제품 사고와 마주한 날

얼마 전 집에서 쓰던 공기청정기가 펑 소리와 함께 멈췄다. 처음에는 그냥 코드 문제인 줄 알았다. 플러그를 다시 꽂아보고, 멀티탭을 바꿔봐도 반응이 없었다. 사 둔 지 2년 정도 된 제품인데, 수리 센터에 연락하니 보증 기간이 지났으니 출장비 3만 원에 부품비가 따로 들어간다는 답변을 받았다. 단순히 고장 난 게 아니라 내부에서 살짝 그을음 같은 게 보여서 조금 덜컥 겁이 났다. 이게 만약 불이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생각이 들자 기분이 묘해졌다.

제조물책임법이라는 낯선 단어의 등장

검색창에 증상을 입력하다 보니 ‘제조물책임법’이라는 단어가 자꾸 눈에 띄었다. 옛날에는 물건이 고장 나면 소비자가 제조사에게 ‘당신들 물건에 결함이 있어서 내가 이렇게 피해를 봤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입증 책임이 예전보다는 조금 완화되었다는 글들이 보였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겪어보니 그런 법 조항은 먼 나라 이야기 같다. 상담원에게 ‘제조 결함 아니냐’라고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사용 환경이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것일 수 있다’는 매뉴얼적인 답변뿐이었다. 도현이법이나 자율주행차 책임 문제 같은 거창한 뉴스들을 보고 나니, 내 공기청정기 하나 때문에 로펌을 찾아가거나 소송을 준비하는 게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실감이 났다.

상담 창구는 생각보다 좁고 멀다

무작정 공정거래 변호사를 찾거나 거창한 의료전문로펌을 검색하는 건 애초에 내 상황과는 맞지 않았다. 그냥 동네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해 봐도 이런 작은 가전제품 문제는 상담비가 더 나올 것 같아 엄두가 안 났다. 한국소비자원이나 분쟁조정위원회 같은 곳에 민원을 넣는 방법도 있다고 하는데, 서류 준비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보통 3개월은 걸린다고 하니 벌써부터 피로감이 몰려왔다. 결국은 그냥 새로 하나 사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그렇게 포기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입증 책임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기업은 늘 ‘개발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다’라거나 ‘과학적으로 결함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방어 논리를 쓴다고 한다. 인보사 사례처럼 7년씩 걸리는 법원 심판을 보면서, 일반인이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 너무 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기계가 멀쩡하기를 바랐을 뿐인데, 고장 한 번에 민법이니 채무불이행이니 하는 개념들을 찾아보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워졌다. 제조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은 결국 대기업과 개인 사이의 힘겨루기처럼 느껴져서 더 답답하다.

여전히 남은 찜찜한 기분

결국 새 공기청정기를 주문했다. 기존 제품은 그냥 분리수거장에 내놓기로 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억울함이 남아있다. 제조사에 따지지도 못하고, 법적 대응은 너무 거창해서 그냥 넘겨버린 내 결정이 옳은 것인지도 확신이 안 선다. 주변에서는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기라고 하지만, 가끔씩 집 한구석에 쌓인 가전제품들을 볼 때마다 이게 안전한 건지 불안한 마음이 불쑥 든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생기면 정말로 어디까지 싸워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금은 그럴 체력이 부족한 것 같다.

“물건이 고장 났을 뿐인데 법률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에 대한 2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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