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
지인에게 2천만 원 정도를 빌려주고 나서 1년 넘게 속을 끓이고 있다. 처음엔 믿었으니까 차용증도 없이 계좌 이체 내역만 믿고 넘겼던 게 화근이었다. 다들 돈 빌려줄 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 당장 급하게 부탁하는 사람한테 ‘계약서 쓰자’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가 참 쉽지 않더라. 결국 연락이 뜸해지고 핑계만 늘어놓는 상황까지 오니 사람이 참 비참해진다. 그래서 시작한 게 지급명령 신청인데, 변호사 사무실을 통하면 수임료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나홀로 소송을 준비해 보기로 했다. 200만 원도 아니고 2천만 원인데 그냥 넘길 수는 없으니까.
전자소송 사이트에서 마주한 벽
대한민국 법원 전자소송 사이트는 들어가기만 해도 진이 빠진다. 분명 시스템은 잘 되어 있다고 하는데, 나 같은 일반인이 서류 한 장 작성하는 게 왜 이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다. 청구 취지랑 청구 원인을 적으라는데, 무슨 법률 용어가 그리도 많은지 사전 찾아가며 한 줄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내가 빌려준 돈은 2,000만 원인데, 여기에 연 이자 5%를 계산해서 넣어야 한다고 해서 엑셀까지 켜놓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입력하는 칸은 또 왜 그렇게 작은지, 오타 하나라도 날까 봐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옆에서 누가 도와주면 참 좋겠는데, 결국 나 혼자 끙끙대며 새벽 2시까지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인지대와 송달료라는 이름의 추가 비용
서류 다 채워 넣었다고 끝이 아니었다. 인지대랑 송달료를 납부하라는 메시지가 뜨는데, 이것도 10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 나간다. 이미 떼인 돈 받으려고 또 내 돈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은행 앱으로 이체를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접수가 되었다는 알림이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상대방이 이의 신청을 하면 민사 재판으로 넘어간다고 하는데, 그 소식 듣고 나서는 밤에 잠도 잘 안 온다. 고작 서류 하나 접수한 건데 벌써 이렇게 지치는데, 실제로 법원을 오가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쩌나 싶다.
추심업체를 고민했던 지난 시간
차라리 돈을 주고 추심업체나 신용정보회사에 맡길까 하는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그쪽은 비용이 만만치 않고, 괜히 돈만 날릴 것 같아서 선뜻 연락을 못 하겠더라. 부산 어느 지법 판결문들을 읽어보니 9억 원을 편취한 사람도 징역형을 사는데, 겨우 2천만 원 때문에 누군가와 법정에서 얼굴 붉히는 게 과연 효율적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영영 못 받을 것 같아서 매일같이 내 계좌 내역만 확인하고 있다. 소액이라면 그냥 잊고 살겠지만, 나에게는 생계가 달린 큰돈이라 포기가 안 된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기다림
지급명령 신청서를 제출한 지 벌써 3주가 지났다. 상대방이 받기는 했는지, 아니면 일부러 피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법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사건 번호 치고 조회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사건 진행 상황에 ‘송달 완료’라는 글자가 뜨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아직 아무런 변화가 없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다들 법 잘 아는 사람 소개해 준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사람들에게 내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피곤해서 그냥 혼자 묻어두고 있다. 돈 문제라는 게 참 사람을 작게 만든다. 법대로 하라는 말이 쉬운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법대로 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 긴 인내심을 요구한다. 이게 잘 풀릴지, 아니면 결국 민사 소송까지 가서 몇 년을 끌게 될지 아직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