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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등기 우편을 처음 받았을 때의 그 기분

빨간 줄이 그어진 등기 우편이 도착했다

며칠 전 우체국에서 온 등기 우편을 받았다. 평소라면 으레 오는 카드 명세서나 공과금 고지서겠거니 싶었는데, 봉투 겉면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붉은색 글씨로 ‘법원’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거실에 앉아 손을 떨며 봉투를 뜯었는데, 내용은 참 건조했다. 채무부존재확인 소송 관련 서류였다. 돈을 빌린 적도 없는데 무슨 소송인가 싶어 멍하니 서류를 넘겨봤다. 관련 서류 뭉치가 생각보다 두꺼웠는데, 서류 한 장마다 찍힌 도장들이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던지 모르겠다.

3000만 원 이하의 소액사건이라는 사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소액사건으로 분류된다고 하더라. 청구 금액이 3000만 원 이하면 판사가 판결문에 이유를 적지 않아도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기가 막혔다. 내가 왜 이 돈을 줘야 하는지, 아니면 왜 안 줘도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판결문에 생략될 수 있다는 거다.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내 인생의 큰 사건인데, 법원 입장에서는 그저 수많은 사건 중 하나로 처리되는 것 같아 씁쓸함이 밀려왔다. 변호사를 선임하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상담 한번 받는 데 대략 10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가 오가고, 소송 대리까지 맡기면 수백만 원은 우습게 나간다는 소리를 들으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민사소송법과 씨름하며 보낸 주말

인터넷으로 ‘민사소송 하는 법’을 검색하며 밤을 지새웠다. 상법 강의를 찾아보기도 하고, 민사소송법 조항들을 읽어봤지만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관계가 중요하다고 해서 수년 전 주고받았던 메신저 기록까지 다 끄집어냈다. 가압류가 들어올 수도 있다는 말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혹시라도 급여가 묶이면 생활이 어떻게 될까, 그런 사소하면서도 구체적인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채무자 감치나 강제집행정지 같은 무시무시한 용어들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법률 용어는 왜 그렇게 다들 어렵고 위압적인지, 읽다가 덮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호해지는 진실

항소심까지 가면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감도 안 잡힌다. 주변에서는 다들 ‘그냥 변호사 하나 끼고 깔끔하게 끝내라’고 말하는데, 그 ‘깔끔하게’라는 말 뒤에 숨겨진 돈과 시간의 무게를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그 서류 제출 기한이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예전에 뉴스에서 본 보험사기 관련 승소 사례나, 기업들이 집단소송에 휘말려 쩔쩔매는 기사들이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읽혔다. 그들도 다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싸움

지금도 소송은 현재 진행형이다. 준비서면을 작성해서 제출하고, 상대방이 내는 반박문을 기다리고, 다시 답변서를 쓰는 반복의 연속이다. 처음에는 억울해서 잠도 안 왔는데, 이제는 그냥 무덤덤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도 가끔 법원에서 우편물이 오면 여전히 손끝이 떨린다. 이 소송이 끝나면 정말로 모든 게 정리될까. 아니면 또 다른 문제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을까. 승소하면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는데, 그 금액이 1500만 원이라는 뉴스를 보니 과연 그 돈이 나의 지난 몇 달간의 고통을 보상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오늘도 법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건 번호를 조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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