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인 줄 알았는데 미성년자라니
얼마 전에 사촌 동생이 대학 근처로 자취방을 구한다고 해서 같이 알아봐 주러 다녔다. 올해 만 18세니까 당연히 자기 명의로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부동산에 들어갔더니 분위기가 묘했다. 공인중개사분이 내 동생 나이를 듣자마자 바로 표정이 굳어지면서 ‘법정대리인 동의서’ 이야기를 꺼내는 거다. 나는 그냥 대학교 합격증만 있으면 바로 계약서 쓰고 입주할 줄 알았는데, 법적으로는 민법상 미성년자라 내 마음대로 계약을 체결했다가 나중에 부모님이 취소할 수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싶어서 처음엔 중개사가 괜히 복잡하게 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옆에서 설명을 들어보니 우리가 평소에 ‘성인’이라고 생각하던 기준이랑 법이 말하는 기준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였다.
부동산 사장님이 계약을 꺼리는 이유
중개사분 말로는 집주인들이 이런 리스크를 굉장히 싫어한다고 한다. 혹시라도 나중에 부모님이 나타나서 ‘우리 애가 미성년자인데 왜 동의 없이 계약했냐’고 따지면서 계약 자체를 없던 일로 하겠다고 하면, 집주인 입장에서는 이미 받아둔 보증금도 다 돌려줘야 하고 중개 수수료도 꼬이게 된다는 거다. 실제로 부동산 계약이 취소되는 경우가 흔치는 않겠지만, 집주인들은 괜한 분쟁에 휘말리는 걸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였다. 우리가 보러 갔던 학교 앞 원룸은 월세가 50만 원에 보증금 500만 원 정도 하는 곳이었는데, 이런 싼 방일수록 집주인들은 더 깐깐하게 굴었다. 결국 그날은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돌아왔다. 부모님께 연락해서 동의서를 팩스로 보내달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 둘 다 그게 정확히 어떤 서류인지도 몰라서 우왕좌왕했다.
서류 챙기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다음 날 다시 부동산에 가려고 준비하는데 서류 준비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부모님 인감증명서까지 필요하다고 해서 사촌 동생이 본가에 전화를 걸어 퀵으로 받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처음에 가볍게 생각했던 부동산 계약이 갑자기 행정 절차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부24 사이트에서 여권 재발급받을 때도 법정대리인 인증을 해야 해서 복잡했던 기억이 있는데, 부동산은 훨씬 더 직접적이라 압박감이 컸다. 괜히 동생한테 ‘그냥 기숙사 들어가면 안 되냐’고 핀잔을 줬다가 분위기만 서먹해졌다. 사실 나도 예전에 알바 구할 때 보호자 동의서 내느라 진땀 뺐던 기억이 있는데, 이게 나이만 찼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몸소 체험하고 나니까 좀 허탈했다.
결국은 부모님 도장을 찍어야 했다
결국 법정대리인 인감 날인된 위임장을 가지고 다시 중개업소를 찾았다. 집주인에게 미리 서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니 그제야 ‘그럼 계약서를 쓰자’고 연락이 왔다. 그 짧은 과정 동안 든 생각은 ‘도대체 만 19세는 언제 되는 건가’ 하는 것뿐이었다. 겨우 몇 달 차이인데도 법 앞에서는 이렇게 엄격하게 구분되다니.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오는데, 동생은 이제 독립했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왠지 모를 피로감이 밀려왔다. 법이 보호해 준다는 명목이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낙하물 사고처럼 갑자기 떨어진 행정 폭탄 같은 느낌이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계약 관련해서 문제가 생기면 누가 더 책임져야 하는 건지, 이런 건 학교나 부모님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데 막상 닥치니까 너무 막막했다.
여전히 남는 찜찜함
계약을 다 끝내고 나오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중개사님은 이제 문제없다고 웃으면서 말했지만, 만약 나중에라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제대로 안 돌려주거나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거나 하는 상황이 오면 그때는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법적으로는 대리인이 계약했으니 문제가 없다지만, 18살인 동생이 혼자 살면서 겪을 세상은 생각보다 더 복잡해 보였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그냥 대충 넘어가면 된다고 하지만, 한번 서류의 무서움을 겪고 나니까 이제는 모든 게 다 계약서나 동의서가 필요한 일처럼 느껴진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랑 밥을 먹으면서도 괜히 ‘앞으로는 무조건 서류부터 챙기자’는 말만 반복했다. 계약이라는 게 참, 서명 한 번 하는 게 뭐라고 이렇게 사람을 진 빠지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알바 구할 때도 보호자 동의서 때문에 멘붕이었거든요. 18세는 정말 복잡하네요.
부동산 계약 때문에 서류 준비가 그렇게 힘들었던 거, 정말 공감해요. 저도 처음 계약할 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서류가 필요하더라고요.
여권 재발급 받을 때도 법정대리인 인증이 필요했던 거 기억나네요. 나이 때문에 겪는 번거로움이 생각보다 훨씬 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