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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증명 보내고 나니 오히려 더 막막해졌다

변호사 사무실 문턱이 왜 이렇게 높은지

살면서 경찰서에 갈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그냥 동네 변호사 사무실을 기웃거렸는데, 상담비만 해도 한 시간에 20만 원을 부르는 곳이 수두룩했다. ‘법무법인 순위’니 뭐니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광고가 잔뜩 뜬 대형 로펌들에 전화를 돌려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하나같이 일단 방문해서 상담을 받아보라는 것뿐이었다. 결국 내 상황을 제대로 말하기도 전에 선임료 얘기부터 나와서 덜컥 겁부터 났다. 변호사를 선임하면 당연히 해결되겠지만, 그 비용을 감당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그냥 고소장 양식만 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 혼자 버텨보는 게 나은 건지, 그날 밤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모니터만 쳐다봤다.

고소장 하나 쓰는 게 이렇게 복잡할 줄이야

결국 혼자 해보기로 마음먹고 고소장 양식을 인터넷에서 찾았다. 근데 막상 쓰려니 ‘범죄 사실’이라는 칸을 채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내가 당한 일이 단순히 사기인지 아니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위반에 해당해서 사기 금액이 5억 원을 넘는 건지, 법리적인 따짐이 필요했다. 5억 원이 넘으면 형량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나서, 혹시 내가 쓴 글이 나중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돼서 한 문장을 쓰고 지우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경찰서 민원실에 접수하러 가던 날, 손에 쥔 서류봉투가 어찌나 무겁던지. 괜히 주변 사람들이 다 내 서류를 보는 것 같아서 괜히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처벌불원서 얘기가 나오니 마음이 흔들린다

고소장을 접수하고 나니 상대방 측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뺌하더니 슬슬 겁이 나는지 합의를 하자고 매달린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처벌불원서’를 써주면 돈을 조금씩 갚겠다고 한다.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주변에서는 함부로 써주면 나중에 돈도 못 받고 사건만 흐지부지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데, 또 막상 상대방이 사정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인간적인 마음이 드는 내가 바보 같다. 배임이나 횡령 같은 건 액수가 크다 보니 가해자들도 어떻게든 감형받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쓴 고소장이 단순한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을 가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무거워졌다.

수사기관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불려 나가는 날이 잡혔다. 담당 수사관님은 무뚝뚝했고, 내가 준비해 간 증거자료를 내밀어도 “이건 의미 없어요”라며 툭 내뱉으셨다. 억울해서 더 설명하고 싶어도 말을 끊고 필요한 것만 물어보는데, 마치 내가 고소인인지 피의자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수사관이 사건 관계자에게 피의자의 전과나 정보를 흘려서 인권 침해 논란이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막상 그 현장에 있으니 내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서류 속에 묻혀가는 건지 불안하기만 했다. 조사받고 나오는데 오후 4시쯤 됐나, 멍하니 서초동 거리를 걸으면서 내가 도대체 뭘 하려던 건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끝은 보이지 않는데 비용만 나간다

이제는 민사까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형사 고소만 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형사 재판 결과가 나와야 민사 소송에서 승산이 있다는 변호사의 조언을 듣고 나니, 이 싸움이 최소 1~2년은 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들어가는 시간도 문제지만, 중간중간 들어가는 실비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게 나았나 싶기도 하다. 법은 누구의 편인지, 정의가 뭔지 고민할 여유도 없이 그냥 통장의 잔고만 줄어들고 있다. 이 사건이 끝나고 나면, 아마도 나는 다시는 누구와도 금전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으니, 그저 공소시효 안에 끝날 수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내용증명 보내고 나니 오히려 더 막막해졌다”에 대한 2개의 생각

  1. 경찰 조사할 때 수사관님 반응이 정말 당황스러웠겠네요. 증거 자료가 무용지물이라고 하는 건, 앞으로 수사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징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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