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법원 근처를 서성였던 날
솔직히 말하면 살면서 변호사 사무실을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드라마나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거창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꼬인 일 때문에 반강제로 법을 찾아보게 된 거다. 처음에는 소액전자소송이라는 게 있길래 혼자 해보려고 나름 머리를 굴렸다. 대법원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눌러보다가 도저히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법률 용어들 때문에 창을 닫아버렸다. 결국 서초동 근처에 있는 법무사무소를 검색했다. 블로그가 너무 많아서 어디를 가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사무장님이 블로그에 올린 글들에는 ‘승소 사례’ 같은 문구들만 가득했고, 광고 티가 너무 나서 오히려 더 신뢰가 안 갔다. 그래도 어쩌겠나. 혼자서는 항소장 한 줄 제대로 못 쓰겠는데.
낡은 빌딩과 무미건조한 공기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한 사무실 건물은 생각보다 낡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내리니 아주 조용한 복도가 이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꽤 좁은 대기실이 나왔고, 벽에는 법 관련 책자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접수대 앞에 앉은 분은 무척 사무적이었다. 내가 가져간 서류를 대충 훑어보더니 커피 한 잔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그때 마신 믹스커피가 왜 그렇게 썼는지 모르겠다. 상담 비용은 시간당 10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를 이야기했는데, 사실 그게 적정한지 아닌지도 모른 채 일단 알겠다고 했다. 상담을 기다리는 동안 옆에 놓인 신문지를 읽으며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 돈을 내고 있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당연한데 어렵게 느껴지는 것들
변호사를 만나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 횡설수설했다. 6살 아이 양육비 문제나 재산 분할 같은 민감한 이야기를 낯선 사람에게 털어놓는다는 게 생각보다 더 기분 나쁜 경험이었다. 변호사는 내 감정적인 호소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부정행위 입증’이 핵심이니 증거가 있느냐, 언제 어디서 촬영한 사진이냐 같은 것들만 물었다. 나는 사람의 마음이나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분은 오직 법정에서 쓸 수 있는 증거물에만 집착했다. 사실 당연한 일인데, 당시에는 그게 참 서운하고 답답했다. 변호사는 대화 중간에 계속 시계를 보더니 상담 시간 끝났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경찰출석요구서와 얽힌 기억
예전에 아는 사람이 경찰출석요구서를 받았을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안절부절못했는지 옆에서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남의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막상 나도 법률적인 문제로 상담을 받고 나니 밤에 잠이 잘 안 왔다. 특히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같은 건 정말 읽어도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법이 우리를 보호해 준다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 입장에서는 법은 나를 보호해 주는 방패라기보다는 내가 넘어야 할 아주 높고 딱딱한 벽처럼 느껴진다. 법무법인 광야든 어디든, 일단 이름을 건 곳은 다 비슷해 보였다. 대단한 해결책이 있을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오히려 더 막막한 기분만 남았다.
내가 놓친 것들과 앞으로의 시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 변호사가 했던 말이 다 맞긴 했다. 법은 감정을 다루는 게 아니라 사실 관계를 다루는 거니까. 상담이 끝나고 나서 사무실을 나오는데, 건물 밖의 세상은 너무나 평화로워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법무사무소 문을 나서며 문득 든 생각은, 사람이 사람을 믿고 계약서 한 장 없이 일을 시작하는 게 정말 위험한 일이라는 거였다. 나중에는 세무변호사까지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이 정도로 복잡해질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텐데. 아직 소송은 끝나지 않았다. 가끔 법원 우편물이 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건 여전하다. 앞으로 또 어떤 서류가 날아올지,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여전히 확신은 없다.

계약서의 복잡함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드는 건, 처음 겪는 일의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아요.
믹스커피가 쓴 맛이 느껴지셨다니,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법률 상담 자체가 주는 압박감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드는 건 당연할 것 같아요.